하우스 오브 드래곤 1시즌 에피 1~5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획이다. 조지 마틴 옹이 나서서 주도한다고 했을 때, 아니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싶었다. 새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여력이 있었으면 '왕좌의 게임' 결말부를 먼저 챙겼어야지? '얼음과 불의 노래'의, 옛날부터 예정되었으되 아마도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6권 이후 이야기가 하다못해 '불과 피' 수준으로라도 정리되었다면 '왕좌의 게임'이 저렇게 기록적인 흥행을 올리고도 욕을 바가지로 퍼먹을 일은 없었지 싶은데? 본업인 저거는 뒷수습을 안 하시고 또 새 드라마 일을 벌인다고? (덩크와 에그 이야기 후속편 안 나오는 일 같은 것은 이제 욕할 기운도 없다...)

  그래서 여러모로 곱잖은 눈으로 쳐다봐 온 기획인데, 실제 나오고 있는 결과물은 뜻밖에 대단히 준수하다. 원작인 '불과 피'가 드라마화하기에 '얼음과 불의 노래'보다 꼭 더 쉽다고 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인데, 역시나 거대 자본은 고급 인력들을 갈아넣어서 어떻게든 기적을 만들어낸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피'가 '얼음과 불의 노래'보다 더 (드라마로) 어려운 점은, '불과 피'에는 대너리스 타르가리엔도, 존 스노우나 아리아 스타크, 티리온 라니스터도 없기 때문이다.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들 여럿을 잔인한 현실 속에 던져넣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위험천만한 게임을 즐기게 만드는 '얼음과 불의 노래'와 달리, '불과 피'는 제각기 장점과 단점을 지닌 인물들이 한층 더 공평하게 악전고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약속의 왕자도 운명의 공주님도 없이, 똑같이 어리석고 똑같이 잔인하며 똑같이 시야가 좁은 인물군상들이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라서, 조금만 연출이 루즈해져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왜 쟤들의 저런 삽질을 구경하고 있어야 되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역사물과 달리 쟤들은 교과서에도 나오지를 않으니까.

  아마도 '왕좌의 게임'이 없었다면 애당초 시즌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왕좌의 게임'으로 얻은 흥미와 호기심을 꽉 붙들어서 낯선 인물들에게 묶어놓은 후, 돈과 인력을 갈아넣은 퀄리티로 어떻게든 그 낯설었던 인물들에게 흥미를 갖게끔 만들고야 만다. 우선은 전작의 대너리스가 살짝 연상될 만한 은발소녀(라예니스 타르가리엔)와 그녀의 베프로 시작해서 마틴 옹이 원래부터 너무 잘 만드는 생또라이 왕자님 캐릭터(다에몬 타르가리엔)의 위험한 매력을 보여줘서 시선을 붙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엮이는 인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보여줘서, 어느새 가상세계 속 군상들의 관계와 욕망에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이다. 조금이라도 지루해질 만 하면 폭력과 섹스와 중세문물 볼거리로 양념을 치고, 구구한 설명들은 등장인물들간 관계 밀당에 어떻게든 끼워넣어 처리한다. 보면 볼수록 사극에 도가 텄구나! 라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이었다.


  특히 라에니아 역할 아역(?)배우의 연기력이 훌륭해서, 미숙하지만 진지한 또라이 라에니아 공주의 묘사가 전작의 대너리스 이상으로 잘 그려졌다. 또 원작에서는 존재감이 너무 없는 비세리스 왕을, 아빠로서의 역할과 왕으로서의 역할 모두에 충실하고자 없는 역량을 쥐어짜는, 나약하지만 성실한 가부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의 비세리스 왕이 착하기만 하고 책임감이 부족한 위인이었다면 드라마의 비세리스 왕은 오히려 책임감이 지나쳐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려다 결국 자신을 포함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으로서 1시즌 전반부의 진 주인공이라 할 만했다. 그 외에도 알리산트 왕비를 라에니아 공주의 베프 내지 (해석에 따라서는)연인으로 과감하게 재해석한 대목도 무척 흥미로우면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선택이었다. 이쯤 되면 벨라리온네가 흑인이라니 여기에도 피씨 묻었네! 뭐 이런 투정은 그냥 유치해 보일 따름. 어쩌면 마틴 옹이 (여전히 그 양반 생각하면 이가 갈리지만) 깊이 개입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분방한 재해석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으나, 등장인물들을 시청자 앞에 이만치 가깝게 데려다놓았다면 지금의 관성대로만 이어져도 명품 대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보인다. 정말로 사극에 도가 튼 사람들이 만드는 드라마라서, '왕좌의 게임' 때와 달리 완결과 완성도에 큰 걱정하지 않으면서 이후 시즌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